양자역학은 미시세계에서 분자나 원자, 입자, 파동이 나타내는 물리학적 현상을 설명하는 물리법칙이다. 일반인은 물론 과학자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게 양자역학이지만, 이를 응용한 양자기술은 이미 산업은 물론 일상생활까지 스며들었다. 우리가 보는 세계에 통하지 않는 양자의 특성을 활용한 차세대 컴퓨터와 센서, 통신 기술이 속속 나오고 있다.
윤지원 에스디티(SDT) 대표는 스스로를 양자공학자로 부른다. 양자기술이 산업 현장에 등장하면서 물리법칙이 아니라 양자공학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에스디티는 양자기술을 기반으로 산업 현장에 필요한 장비와 양자기술의 표준을 만들기 위한 제어·계측 장비를 제작한다. 임직원 85명이 힘을 합쳐 양자컴퓨터와 양자 센서, 양자통신 장비 개발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에스디티 사무실에서 만난 윤지원 대표는 “학부부터 병역특례연구원까지 다양한 양지기술을 섭렵한 것이 창업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물리학과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에서 전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학부에서 이온트랩, 석사과정에서는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를 배웠다고 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에서 2014년부터 병역특례로 연구를 하면서 다이아몬드 인공원자 기반 양자컴퓨터 개발에 참여했다.
기존 컴퓨터는 전자가 없거나 있는 것을 0과 1, 즉 1비트(bit) 단위로 표현한다. 이에 비해 양자컴퓨터의 단위는 0과 1 상태가 중첩된 큐비트이다. 일반 컴퓨터가 2비트이면 00, 01, 10, 11 네 가지 중 하나가 되지만, 2큐비트는 네 가지가 동시에 다 가능하다. 만약 큐비트가 300개라면 우주의 모든 원자 수보다 많은 2의 300제곱 상태가 가능해 컴퓨터 능력이 획기적으로 커진다. 구글은 이미 2019년 단 53큐비트 양자컴퓨터로 슈퍼컴퓨터가 1만년 걸릴 문제를 3분 만에 해결했다. 이온트랩, 광자, 다이아몬드 인공원자는 모두 0과 1이 중첩된 큐비트를 구현하는 방법들이다.
윤 대표는 자신이 배운 기술을 산업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보고 창업에 나섰다. 에시디티는 병역을 마친 2018년 설립했다. 윤 대표의 예측처럼 양자기술 시장 규모는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츠앤마켓츠(MarketsandMarkets)에 따르면 양자 컴퓨팅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13억달러(1조8000억원)이며, 연평균 32.7% 성장해 2029년 53억달러(7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스디티가 개발해 부산대 연구팀에 납품한 CCU(Coincidence Counting Unit)과 TTMU(Time Tagging Measurement Unit)
에스디티는 여러 양자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양자의 물리 정보인 스핀 방향을 조작해 얽힘·중첩을 생성하는 양자 컴퓨터 장비는 이미 개발을 완료했다. 양자역학을 이용한 초정밀 측정 장비인 양자센서와 해킹이 불가능한 양자통신 장비도 개발했다.
에스디티의 대표 양자컴퓨터 장비는 CCU와 TTMU, 큐비트 컨트롤러다. CCU(Coincidence Counting Unit)는 두 개 이상의 입력 신호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분석해 양자 얽힘 같은 현상을 분석할 수 있다. 양자 얽힘은 두 개 이상의 양자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 의존하는 독특한 양자 현상으로, 빛의 양자 입자인 광자(Photon) 양자실험에 필수적이다. TTMU(Time Tagging Measurement Unit)는 광자의 시간 통계를 분석해 광자가 양자기술에 적합한 소스인지 측정하는 장비다.
에스디티가 광자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기술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KIST와는 다이아몬드 인공원자, 서울대와는 실리콘, 서울대·고려대 연구팀과는 초전도를 이용한 양자컴퓨터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어떤 물질이 양자기술을 지배할지 아직 모르는 만큼 전반적으로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윤 대표는 “양자기술을 개발하면서 하나의 방식만 붙잡고 있는 건 ‘하이리스크(고위험)’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이 양자 분야에서 1등은 못하더라도 양자기술의 최선봉을 쫓아갈 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자기술을 구현하는 방식이 지금 6개 정도 있는데, 모두 산업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스디티는 산업 현상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양자 장비를 제작한다. 특히 전략적 투자사인 GS(47,600원 ▲ 350 0.74%)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윤 대표는 “다방면에 걸쳐 제조업을 운영하는 GS가 에스디티의 매출에 차지하는 비율은 20% 정도”라며 “양자 센서를 발전소나 건설현장에 실제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스디티가 개발한 CCU로 양자 현상을 측정하는 모습
양자컴퓨터가 모든 문제를 푸는 창이라면 양자암호는 해킹이 불가능한 방패이다. 양자역학에서는 관찰을 하는 순간 그 대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해킹해도 다른 정보를 보므로 의미가 없다.
국방·금융·보건 분야의 해킹을 방지하는 양자암호키분배(QKD) 기술은 현재 실증 단계에 있다. QKD는 파동 형태인 빛을 관측할 때는 광자가 붕괴되는 현상에서 착안해, 해커가 정보를 해킹해도 암호화된 정보만 얻는 기술이다. 에스디티는 서울 우면산에 송신부 1대를 세우고, 인근 4곳에 수신기를 설치해 양자통신을 검증하고 있다. 이 기술은 오는 9월 중으로 국가정보원의 양자암호통신장비 인증을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표는 “에스디티는 양자기술을 과학을 넘어 공학적으로 구현하는 일을 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제일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양자기술 장비를 개발하고 시장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썼는데, 앞으로는 다양한 산업군에 양자기술을 적용해 매출을 늘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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