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 등 신냉전이 본격화하면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수출 통제를 둘러싸고 마치 ‘전쟁’과도 같은 국가 간 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대량살상무기 하면 흔히 핵폭탄이나 생화학무기가 떠오르지만 2024년 현재 수출 통제의 핵심은 인공지능(AI), 첨단 반도체, 양자 컴퓨터 같은 최첨단 기술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기 자체를 만들기 위한 기술을 넘어 경쟁국의 경제적 잠재력 자체를 꺾는 것이 곧 ‘안보’라는 생각이 깔린 것이지요.
이 같은 국제질서의 변화는 수출로 먹고사는, 특히 반도체가 주력 수출품인 한국으로선 반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그간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온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의미하는 ‘안미경중’ 전략이 더는 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최근 급격히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수출 통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수출 통제는 국가가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국의 수출 흐름에 제약을 가하는 수출규제 정책의 하나입니다. 안보를 목적으로 특정 품목, 기술의 수출을 금지 및 제한하는 조치로 경제보다 안보에 방점이 찍힌 개념이지요.
수출 통제는 그 자체로 냉전의 산물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9년 미국 등 15개 서방국은 소련 등 공산국가를 견제하기 위해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 코콤)를 설립했습니다. 코콤 회원국들은 군사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선정해 공산권 수출 금지 품목을 만들고 기술 유출을 강력하게 통제했지요.
1991년 소련 붕괴로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코콤은 1994년 해체돼 1996년 지금의 바세나르 협정으로 대체됐습니다. 바세나르 협정에는 기존 서방국뿐 아니라 한국과 같은 신흥 우방국과 러시아 등 구공산권 국가까지 총 42개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탈냉전 이후 미·중 갈등이 본격화된 2010년 중반까지 20여 년간 수출 통제는 국가 간 패권 경쟁보다 테러 방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각국이 비교우위를 갖는 상품 생산을 전문화하고 관세장벽을 낮춰 수출하는 자유무역 시대의 단면입니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10년대 들어 미·중 간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바세나르 체제는 미국에 패권 경쟁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42개 가입국이 만장일치로 합의해야 새로운 수출 통제가 가능한 바세나르 체제의 구조 속에선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독자적 제재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2022년 본격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수출 통제를 둘러싼 싸움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미국은 바세나르 체제를 우회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2023년 ‘C-1’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만장일치가 아니라도 그에 준하는 회원국 동의가 있다면 수출 통제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지난 9월 5일 미국 상무부가 양자컴퓨터, 반도체 장비 제조 등 첨단산업과 관련한 24개 품목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미국은 이들 품목을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하며 영국·프랑스·일본에 대해선 수출 허가 의무를 면제했지만, 한국은 대상국에서 빠졌습니다.
이들 3개국은 이미 올해 상반기에 미국이 제시한 24개 품목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마친 국가입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수출 통제 전선에 동참한 국가에 대해 대우를 차등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선 상황입니다. 다수의 실증 연구 결과는 수출 통제 조치가 자국 경제와 산업의 성장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말합니다. 2003년 이후 시행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정책은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었지만, 중국 외 생산지 증가, 대체재 개발로 중국의 시장 지배력을 오히려 줄였다고 합니다. 미국이 자국 항공우주산업의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활용한 수출 통제 정책이 공급망 약화 등으로 이어지며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약화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미 세계는 한국에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고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사는 한국에게 ‘경중’보다 ‘안미’가 우선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 원문보기 : https://m.news.nate.com/view/20241014n24964?issue_sq=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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