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고전평론가다 보니 하는 일이 주로 강의와 세미나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줌이 일상화하면서 시공간의 지평이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영국 등과도 연결되었다. 시간의 폭도 넓어져서 이른 새벽, 늦은 저녁에도 부담 없이 세미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긴 스마트폰이 등장할 때 이미 예견된 세상이기도 하다. 손바닥 안에 세계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고, 세상 모든 곳과 동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히 원더풀 월드다!
이런 마법의 원천은 양자역학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특수 상대성 원리’가 발견되었고, 그와 동시에 양자역학의 세계가 열렸다. 하여, 과학계에선 1905년을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17세기 이래 서구문명을 지배해온 뉴턴역학의 패러다임이 전복된 것이다. 하지만 이 경이로운 원리들이 일상을 온통 장악하게 된 것은 SNS, 그리고 줌을 통해서다. 코로나가 ‘결정타’였다. 대체 양자역학이 뭐길래?
줌 강의가 일상화하면서부터 양자역학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유튜브에는 이미 다양한 강의와 해설, 예능까지 넘쳐나고 있었다. 물론 이런 대중성이 무색할 만큼 양자역학은 지독하게 난해하다. 오죽하면 ‘누군가 양자역학을 이해했다면 그건 양자역학을 모른다는 뜻’이라는 조크까지 나왔을까. 그럼에도 거기에는 묘한 긴장과 끌림이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행렬역학’ ‘양자도약’ 등의 용어들이 마치 현대판 ‘고사성어’처럼 회자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과연 그랬다. 양자역학의 방정식들은 나같은 문외한의 접근을 원초적으로 차단한다. 한데, 그 해설을 근근이 따라가다 보면 아주 오묘한 원리들과 마주친다. 가장 유명한 ‘이중슬릿실험’에 따르면, ‘관찰자와 관찰 대상은 분리되지 않는다’. 무슨 뜻인가? 전자가 입자인지 파동인지는 오직 관찰의 순간에만 결정된다.
그럼 관찰 이전에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모른다. 오직 확률로만 존재한다! 와우~ 말하자면 이 우주엔 ‘불변의 고유한 실체’가 따로 없다는 것. 주체도 객체도 없는, 그야말로 ‘무아(無我)’ ‘무상(無常)’의 세계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조금 더 따라가 보면 마침내 ‘시간도, 공간도 다 사라지는’ 실로 희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견고한’ 세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양자들의 무상한 요동 속에서 탄생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일 뿐이다. 주체에서 상호작용으로! 물질에서 사건으로!
이처럼 양자역학은 우리 인식의 문법을 완전히 전복한다. 물론 동양고전에서는 아주 익숙한 메시지들이다. 이 ‘오래된 지혜’를 양자역학은 방정식과 숫자를 통하여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현대물리학과 동양고전의 눈부신 마주침! 게다가 그 지혜는 신의 계시나 명상가의 황홀경 체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마트폰과 줌, 오픈 AI 등을 통하여 신체와 일상에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과연 놀라운 세상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이치들과는 전혀 다르게 살고 있을까? 양자역학은 주체와 대상을 나눌 수 없다고 하는데, 현대인들은 오직 ‘나뿐인 세상’을 고수한다. 주체와 대상을 날카롭게 구획하는 ‘낡은 이원론’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동설 이후에도 천동설을 신봉하고, 진화론 이후에도 창조론을 놓지 못하는 형국과 닮아 있다.
그 결과 도처에서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는다. 이 시간에도 전쟁은 멈출 줄 모르고, 국내 정치의 수준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 중이다. 더 끔찍한 것은 일상에 드리운 전운이다. 투자와 게임은 물론이고 먹방도 요리도, 심지어 교실까지 다 전쟁이다. 가히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 할 만하다.
▷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11172128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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